출간도서
환승(Transfer Passage)
목사, 택시 그리고 나
환승(Transfer Passage)
목사, 택시 그리고 나저자
엘라임 손(El Rhyme Son)출간일
2026년 5월 8일페이지
208쪽판형
국판형(148*210mm)정가
16,800원인생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익숙한 자리에서 내려야 하고, 예상하지 못한 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 책 『환승』은 그 갈아탐의 시간을 통과한 한 사람의 기록이다.
사업가로 시작해 실패와 노숙을 겪고, 41년의 목회를 지나, 지금은 70세의 나이로 택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저자. 그는 자신의 삶을 서울 지하철 노선에 비유하며 다섯 번의 전환을 따라간다. 소유에 기대어 자신을 증명하던 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묻던 밤, 정체성과 생존이 충돌하던 목회 현장의 균열, 그리고 다시 생계를 붙들고 새로운 자리에서 자신을 정의해 보려는 오늘까지.
이 책은 무너지는 과정과 흔들리는 마음을 건너뛰지 않고, 그 안에서 묻는다.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역할이 바뀌어도 삶의 의미는 이어질 수 있는가. 『환승』은 전환을 겪는 이들에게 서둘러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환승역에 서서 방향을 다시 선택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노선을 돌아보는 독자에게 하나의 나침반을 제시한다.
지은이 엘라임 손(El Rhyme Son)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사업 실패 후 극한의 상황에서 겪은 임사체험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실존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닫게 한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통찰을 자신의 삶과 통합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철학은 서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노숙의 바닥에서, 설교단 위에서, 택시 안에서. 삶의 매 순간이 철학의 현장이었습니다.
과거에 사업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사업 실패와 노숙이라는 극한의 체험을 거치며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후 전도자 2년, 목회 21년간 목회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후 전도목사이며 프리랜서로 10년을 보낸 후, 2017년 택시회사에 입사하였고 현재는 동두천 캠프 케이시 미군기지 내 택시기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일을 단순한 생계가 아닌 ‘소명을 다시 회복한 시니어의 행복 드라이빙 2.0’이라 부릅니다.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만남 하나하나를 의미 있는 섬김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발견한 70세의 소명입니다.
이메일 _ everpel@naver.com
추천사
프롤로그
첫 환승 : 소유에서 실존으로
1호선 | 전도자 노선
01역. 준비되지 않은 첫 환승
02역. 엘리제를 위한 소동
03역. 노숙에서 영원까지
04역. 십자가, 자유
05역. 지리산으로 가는 전도자
06역. 베이스캠프, 남사 최씨 고가
07역. 환승 없는 동행
두 번째 환승 : 실존에서 신분으로
2호선 | 목회 노선
08역. 첫 믿음, 첫 핍박
09역. 지리산에 핀 백합화
10역. 고읍들에 장미꽃과 가시
11역. 환승을 기다리며
12역. VIP석의 대가
13역. 교회가 채워 준 목회
14역. 원칙은 지켰으나, 빈자리
15역. 그때 꼭 사임했어야 했나
세 번째 환승 : 신분과 생존을 왕복하며
3호선 | 프리랜서 노선
16역. 숲속엔 쉼만 있지 않았다
17역. 미네랄 전도사로
18역. 스코필드, 미래 인재 로드맵
19역. 여덟 개의 명함, 텅 빈 통장
20역. 10년, 신분과 생존 사이에서
네 번째 환승 : 신분에서 생존으로
4호선 | 택시 노선
21역. 초보 택시기사의 생존기
22역. ABA 연구소 가는 손님
23역. 그 색깔 택시만 기다림
24역. 사각지대
25역. 노란 쿱 택시
26역. 찰칵찰칵, 엄마의 사진첩
27역. 생명선 단절 사태
28역. 코로나, 38선 너머로
29역. Camp Casey 미군택시
30역. 보상 콜
31역. 1달러의 꿈
32역. 시니어, 지혜가 답
33역. 난 택신이 되고 싶다
다섯 번째 환승 : 생존에서 현존으로
5호선 | 참나 노선
34역. 이젠, 내가 나를 운전한다
35역. 노년에 붙잡아 놓은 행복들
36역. 그래도 넌 잘 살아봤잖아
37역. 직업 영성 이야기
38역. 엇박자로 피워 올린 웃음꽃
39역. 빈손이 충만하다
40역. 환승을 하면서
1982년 가을. 나는 서일물산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학위를 포기한 자리에 꿈을 세웠다. 스물일곱, 패기만은 넘쳤다.
아이템은 포크레인 인형 뽑기 자판기였다. 자판기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시절, 오락과 자판기를 결합한 최초의 시도였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거리에 울려 퍼지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2분 30초, 조이스틱을 잡은 아이의 눈빛은 진지했다. 인형, 땅콩, 각종 선물이 투명한 상자 안에서 손짓했다. 한 타임이 끝나면 다시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렀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거리를 채웠다.
서울 남대문 그랜드호텔 빌딩에 총판 사무실을 열었다. 입소문이 퍼졌다. 영업사원들이 모여들었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영업도, 재무도, 경영도 몰랐다. 군대에서 배운 일방적 지시만이 내가 아는 경영의 전부였다. 그날 벌어들인 돈을 그날 다 썼다. 그래도 사업은 잘됐다. 지사가 생겨났다. 서울에서 소문난 세일즈맨들이 찾아왔다. 매일 밤을 새우며 회식하고 수익금을 쏟아부어도 회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착각했다. 이것이 내 능력이라고.
초등학교 정문 앞 문구점이 최고의 판매처였다. 등하교 시간, 자판기 앞에 줄이 늘어섰다. “사장님, 대박이에요! 하루 수익이 장난 아닙니다!” 문구점 주인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나는 매일 회식 자리에서 잔을 들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부메랑이었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너무 시끄럽다는 고성 민원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자판기에 몰두하느라 지각했다.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관할 당국에 신고가 접수되었다. 학교 앞 자판기 단속이 강화되었다. 판매가 급감했다. “반품 처리해 주셔야겠습니다.” 대부분 할부 판매였기에, 반품은 곧 재정 악화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은행 거래, 신용, 자본, 체계적 경영의 중요성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월급날 아침, 경리 직원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아무 말 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침묵이 전부였다. 그날 이후 하나둘 짐을 쌌다. 붙잡을 수 없었다. 붙잡을 자격이 없었다.
- 이 책 본문 中에서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익숙하게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끊기고,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다. 이 책 『환승』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기록이다. 단순히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그 방향이 바뀌는 순간마다 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다시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이 책의 출발점은 시카고 오헤어 공항이다. 연결편을 놓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채 공항 한가운데 서 있던 순간. 저자는 그 경험을 이후의 삶을 설명하는 하나의 구조로 받아들인다. 길을 잃고 멈춰 서게 되는 시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 『환승』은 그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묻는다. 나는 왜 이곳에서 내려야 했는가, 그리고 그때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가.
사업가로서의 삶과 실패, 그리고 노숙의 시간은 이 책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보이지만, 저자에게는 오히려 가장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 계기였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남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유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존재를 묻기 시작한다.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은 이후의 모든 시간 속에서 반복되며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어지는 목회의 시간 또한 단순히 하나의 소명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4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설교단 위에 서 있었지만, 그 자리가 늘 분명하고 안정된 곳이었던 것은 아니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생겨나는 긴장, 소명과 생존이 충돌하는 순간들, 역할이 삶 전체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들이 이 책에는 숨김없이 담겨있다. 저자는 그 시간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흔들렸던 감정과 고민을 그대로 두고, 그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조용히 풀어낸다. 신앙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시간을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목회를 떠난 이후의 삶은 또 다른 전환을 가져온다.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이름이 더 이상 삶을 지탱해 주지 않는 시간. 프리랜서로, 그리고 택시 운전자로 살아가며 저자는 다시 생존의 문제 앞에 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직업의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그는 이 과정을 추락이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과거의 실패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택시 운전석은 그에게 있어서 그저 단순한 생계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 짧은 대화와 침묵이 오가는 시간 속에서 저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만난다. 목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사람과 마주한다는 점에서 이 모든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철학 역시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실존이라는 개념은 관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노숙의 시간, 목회의 갈등, 현재의 일상 속에서 체험된 것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철학을 빌려 삶을 설명하기보다, 삶을 통해 철학을 이해한다. 그래서 『환승』은 철학 에세이이면서도 동시에 생활의 기록이다. 사유는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결국 하나의 태도다.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라는 것. 길이 끊겼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자리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때로는 막막한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환승』은 전환을 겪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전환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기준이 된다. 삶이 단선이 아니라 여러 번의 갈아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갈아탐이 끝이 아니라 이어짐이라는 점을 이 책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 더 이상 증명할 것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는 삶. 그 조용한 상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이 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