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서
형광등
박연 시집
형광등
박연 시집저자
박연출간일
2026년 9월 10일페이지
104쪽판형
46판형(128*188mm)정가
12,000원박연 시집 『형광등』에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하루의 작은 풍경들이 머물러 있다. 새벽의 공기와 달빛, 길가의 풀과 낙엽, 커피 한 잔과 라면 한 그릇, 학교와 스승, 친구와 가족까지 평범한 삶의 순간들이 시인의 눈을 거치며 따뜻한 이야기가 된다.
시인은 외로운 밤에도 사람을 떠올리고, 지나간 시간 속에서 그리운 얼굴을 불러낸다. 작은 방에서 시계 소리를 듣다가도 다시 컴퓨터를 켜 글을 쓰고, 아침이 오면 몸을 일으켜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그래도 페이지가 넘어가네요”라는 한 구절처럼 그의 시에는 삶의 쓸쓸함과 그것을 견디며 앞으로 걸어가는 마음이 함께 흐른다.
『형광등』이라는 제목은 이 시집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제 몸을 밝히며 누군가의 자리를 비추는 형광등처럼, 시인은 자신보다 먼저 주변의 존재를 바라본다.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와 낯선 사람의 눈빛에서도 마음을 발견하고, 스승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며 아직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움과 외로움, 감사와 웃음이 한데 어우러진 『형광등』을 읽다 보면 시인의 이야기는 어느새 독자 자신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와 잊고 있던 학교, 어머니의 손길과 어느 날의 새벽이 문득 떠오른다. 평범한 하루 안에 오래 켜져 있던 작은 빛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시집이다.
시인 박연
고향 : 부산
수원과학대학 졸업
2013년 서울문학 시인 등단
시집 : 「무수리 방언」, 「한 점 별이 되어」, 「동무야」
수필 : 「얄개 만학도의 편지」
E-mail _ parkyeon418@hanmail.net
추천사
축사
시인의 말
그리움
공간 (1)
눈 내린 아침 교회 가는 길에
아이야
가을
학교야 학교야
공간 (2)
식사
한밤에
전하는 말
새벽 공기
달 밝은 밤에
반갑습니다
저 하늘에 부르는 청혼가
벗이여
여보게 친구
스승의 은혜 (1)
스쿨버스 안에서 (1)
비 내리는 새벽에
형광등
봄
스쿨버스 안에서 (2)
심중에
삼각관계
그대 삼행시
봄이 오면
얼굴
내 작은 눈물에 엎드려
보내기
버스 안에서
스승의 은혜 (2)
커피 한 잔
꽃
아침에 인사
묻어 둔 흔적
해를 보던 아이는
가는 걸음 아쉬움에
새벽 예찬론
스승의 은혜 (3)
동그라미 사랑
침묵 도모
절름발이 철길
거부
이 새벽에
철새는 날아가고
아침에 눈을 뜨니
돌아보는
나의 세상
일어난다
사라진 그녀
올바른 지도자
세모의 행방
누이야
아침을 열다
우리 집
회계학
은행잎
쉬어가는 길에
비 갠 하늘
낯선 방문객
오늘의 보고서
문안
출근길 낯선 사내의 눈빛
차가운 수저
전등 불빛이 아름다운
밤입니다
사람을 비춰주기 위해
집안을 밝혀주기 위해
그의 몸은 얼마나 뜨거운 열기로
불이 나고 있을까요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나도
속에서 열이 나건만
저 형광등은 말을 몰라
소리도 몰라 내지르는 아픔까지도 몰라
타고 타는 저 속을 오늘
내 온 가슴으로 끌어안아 보렵니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바보라
오로지 하나 충성된 마음으로
이 몹쓸 놈을 위해 온몸을 녹여
빛을 내주는 형광등이
깊어 가는 가을밤을 훤히 밝혀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밤입니다
- 본문 詩 ‘형광등’ 전문
어떤 빛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밝아지고, 어떤 빛은 누군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오래 켜져 있다. 박연의 시집 『형광등』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후자의 빛이다. 밤이 깊어도 말없이 방 한쪽을 밝혀주는 형광등처럼, 이 시집의 시들은 크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살아온 시간을 가만히 비추고, 지나간 사람의 얼굴을 불러오고, 오늘 하루의 작은 표정들을 오래 바라본다.
표제작 「형광등」에서 시인은 사람과 집을 밝혀주는 불빛의 안쪽을 바라본다. 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뜨거워지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내 온 가슴으로 끌어안아 보렵니다”라고 말한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 앞에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 아마 이 한 장면이 박연 시인의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 시선은 오래 살아온 사람의 것이면서 여전히 세상을 궁금해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봄을 만나면 작은 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을바람이 불면 문득 오래된 엽서를 떠올린다. 비가 그친 하늘을 바라보다가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고, 길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의 지친 얼굴에도 마음을 건넨다. 익숙한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는 특별한 순간을 기다려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마음에 닿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일에 가깝다.
그의 시에는 그리움이 자주 머문다. 떠난 사람과 지나간 시간, 학교와 친구, 스승과 가족이 어느 날의 달빛처럼 문득 돌아온다. 친구에게 “우리 손잡고서 달구경 가세나”라고 말을 건네는 마음에는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소망이 있고, 누이에게 “내 손잡고 살어랑”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에는 아직 건네고 싶은 온기가 남아 있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그 사람의 자리를 오래 남겨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외로움 또한 이 시집을 흐르는 한 결이다. 새벽과 밤이 유난히 자주 찾아오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잠든 뒤 홀로 깨어 있는 시간에는 마음속에 묻어 둔 것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은 작은 방에서 시계 소리를 듣고,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때로는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다시 일어나 컴퓨터의 스위치를 켠다. 「나의 세상」에서 그는 “작은 방이 전부”라고 말하다가 이내 “그래도 페이지가 넘어가네요”라고 쓴다. 외로움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하루에도 삶은 조금씩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시집 『형광등』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쓸쓸함보다 그 쓸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의 체온이다. 시인은 쉽게 자신을 위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오래 절망 속에 놓아두지도 않는다. 잠들지 못하면 다시 일어나 글을 쓰고, 아침이 찾아오면 세수를 하고, 부족함을 느끼면 책장을 펼친다. 삶을 바꾸는 거창한 선언보다 오늘 해야 할 작은 일을 다시 시작한다.
특히 배움에 대한 시인의 태도에는 진솔한 울림이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배움을 멈추지 않고, 스승 앞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인다. 「나의 언약」의 “나 내일의 자랑스런 어제가 되기 위해”라는 구절에는 시인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지나온 세월을 내세우기보다 아직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 오늘의 모자람을 내일의 노력으로 이어가려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태도가 시집 곳곳에 잔잔하게 배어 있다.
이 진지함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는 것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때때로 유쾌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허기진 새벽 라면 한 그릇 앞에서 세상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감기몸살을 봄과 겨울 사이의 ‘삼각관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회계학의 언어로 삶의 손익을 계산하고, 차 한 잔과 시계 초침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신의 고단함조차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이 소박한 유머 덕분에 시인의 목소리는 한층 가까워진다.
박연의 시에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언어보다 살아 있는 말의 표정이 먼저 느껴진다. 옛스러운 어투와 오늘의 생활어가 한자리에서 만나고, 때로는 선비처럼 달빛을 바라보다가 다음 순간 컴퓨터 앞에 앉고 라면을 끓인다. 그 자유로운 언어의 움직임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시를 위해 만들어 낸 목소리라기보다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말해온 사람의 목소리에 가깝다. 바로 그 점이 시집 『형광등』만의 독특한 온도를 만든다.
시집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박연 시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시가 독자의 기억을 건드릴 때, 타인의 이야기는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