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서
꽃잎은 바람에 지고
꽃잎은 바람에 지고
역사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공부라 생각된다. 그 시대의 선조들이 꿈꾸었던 세계나 이상, 가치관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보는 시각도 넓힐 수 있을 것이며, 삶의 지혜의 조각도 어느 정도 마음속에 담겨지지 않을까?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 그 점에서 본다면 일제 치하의 아픈 우리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고 한 번쯤 언급하며 함께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섰다. 나라를 일제에게 강제로 강탈당하고, 그기에 맞서 우리의 선조들이 의병활동과 독립군으로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고 처절히 싸워온 역사에 대해 우리들은 너무 몰랐고, 뿐만 아니라 잘못 알려진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며 그것이 진실인양 애써 외워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부끄러웠다. 외세에 의해 조국이 강탈당하자 많은 이름 모를 의병과 독립군들이 지켜야 할 가정과 누리고 싶은 욕망을 뒤로 하고 무엇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조국을 위해 바쳤는지 오늘날의 우리 후손들은 최소한 한 번쯤은 되짚어볼 수 있는 공부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해방이 되어서도 그 고달픔은 보상받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때 부를 누리고 권력을 가졌던 이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사업을 번창시키고 권력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일부는 대기업을 운영하고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 조직에 몸담는 것이 성공의 잣대가 되는 삭막한 현실이다. 해방 후 정권을 잡은 정부는 그들을 대한민국을 살리는 주역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으며, 그들은 막강한 부를 누리며 나름의 왕국을 만들어 호의호식하며 영화를 누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옳고 그름은 무엇인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비평가도 아니고, 분석가도 아니요, 역사학자도 아니다. 오직 부(富)를 누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정말 우리들 가슴속에 심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물질문명의 꼭짓점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역사를 통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능한 많은 애국선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싶었다. 화려한 문장기술을 부릴 수도 없었지만 가능한 간결하게 표현했다. 딸과의 약속처럼 재미있는 역사책으로 엮을 수 없는 건 나의 한계였다. 그러나 재미보단 이 책을 읽고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삶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나름의 마음이 이 책을 통해 건강하게 성숙될 수 있는 기초가 되기를 바란다. 뒷부분에 기(氣)에 대해 다루었다. 생활 속의 기수련을 하면서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가능한 건강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기수련을 하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건강을 다루는 내용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기는 건강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 박선우
우리에게 ‘정체성’은 꿈을 향해 도전하게 해주며, 어려움을 만났을 때는 씩씩하게 대처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한 리더로 자랄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특별히 이 책에는 사건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다루고, 독자들에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자연선법원을 운영하며 심신수련인 내가권, 태극권, 팔괘장, 천무도, 기수련을 수행하고 있다.
제1부.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지다
(1) 세도정치와 흥선대원군
(2)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3) 동학농민혁명군
(4) 을미사변
(5) 이회영 선생의 집안
(6) 의병
(7) 석주 이상룡
제2부. 꽃잎은 바람에 지고
제3부. 기(氣)의 세계와 태극권
(1) 눈으로 보는 기(氣)의 세계
(2) 동의보감 건강편
(3) 기치유
(4) 자연선법
(5) 태극권 신체 각 부위별 기본 연공
“일본군의 주력부대가 기관총 등 중무기로 몇 차례 돌격을 시도했으나 죽음을 불사한 독립군의 강인한 의지로 물러섬이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100여 명을 사살하였고 일본군은 황급히 물러갔다. 이로써 청산리 전투의 첫 승리를 이루어 우리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다.”
“자당은 김원봉도 만나고 싶었다. 신흥무관학교 동기들과 함께 의열단을 만들어 무장독립투쟁을 한다고 들었다. 상해로 갔지만 의열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술집에 들어가 의열단을 모르냐고 물었다. 소문을 듣고 의열단이 먼저 자신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술집에서 며칠이 지나자 누군가가 총을 겨누며 물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너무나 어려웠다. 열성적이었던 독립운동가들도 지치고 고달픈 삶에 고통스러웠고, 기나긴 여정 속에 독립 희망을 잃고 변절자가 많이 나왔다. 독립은 올 것 같지 않았다. 국토를 강탈당한 식민지 백성들의 애환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반미특위는 소극적이나마 활동을 개시했다. 광복 후 무엇보다도 신속히 친일파를 척결함으로서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남한에 반공국가를 수립하기 위하여 공산세력에 대항할 세력으로 기득권인 친일파에 주목하였다.”
조선 말기(구한말) 나라는 극도로 부패하였다. 조정은 뿌리 깊은 당파 싸움과 세도정치 속에서 나라의 부국강병에는 전혀 힘을 쏟지 않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족보를 위조해서라도 양반이 되려는 자들이 늘어갔다. 일제는 그 틈새를 휘젓고 들어와 국론을 분열시키고 1895년 10월 8일 새벽 2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1905년 11월 19일 을사늑약, 마침내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경술국치)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부모 잃은 고아처럼 가련한 신세가 된 우리 민족은 1919년 3 · 1 독립운동 이후 허탈감에 빠진 상태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었으며, 이때 확산되기 시작한 공산주의는 마침내 6 · 25 전쟁을 가져와 온 나라를 잿더미로 초토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