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서
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
검 손잡이에 새겨진 단어
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
검 손잡이에 새겨진 단어저자
Dr. 보라짱출간일
2026년 9월 17일페이지
276쪽판형
신국판형(152*225mm)정가
16,000원“역사 미스터리와
판타지 모험이 한 흐름 안에서 만나는 이야기!”
천오백 년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한 한 단어가 단검의 손잡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다. 누구를 위해 새겨진 말이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서쪽에서 쫓겨난 왕자와 동쪽의 젊은 전사들.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닌 이들은 사막과 바다를 건너며 하나의 약속으로 묶인다. 그들의 앞에는 왕좌를 노리는 욕망과 궁을 잠식하는 어둠, 가장 가까운 이를 의심하게 만드는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검이 빛날 때마다 누군가의 숨은 짧아지고, 지키려는 마음은 점점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 우정은 충돌하고, 믿음은 흔들리며, 끝내 누구의 선택이 모두의 운명을 바꿀지 알 수 없다.
경주에서 발견된 황금보검과 페르시아의 오래된 전설이 만나는 순간, 잊힌 사람들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국의 영광보다 오래 남은 한마디, 그 검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음의 이름을 따라가는 장편 판타지 사극이다.
저자
연구개발 현장에서 기술과 사람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공학박사이며 작가.
2020년, 삶의 큰 전환점을 지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의 오래된 유물 속에 남겨진 동서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역사의 빈틈에 상상력을 더하고, 그 속에 사람의 삶과 희망을 담는다.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새로운 꿈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저작권 등록번호 C-2024-004209)
추천사
프롤로그
서(序)
제1부. 버려진 보물
01. 두 개의 시작
02. 눈밭의 아이들
03. 네 개의 힘
04. 벼려지는 날들
제2부. 서역의 불꽃
05. 사막의 전쟁
06. 왕의 검
07. 죄를 마주하는 법
제3부. 돌아온 자리
08. 폭풍과 예언
09. 스며든 것들
10-1. 궁의 그림자
10-2. 이름 없는 자
제4부. 검이 삼킨 밤
11. 사라진 궁수
12. 궁으로
13. 세 개의 숨결
제5부. 천오백 년 뒤
14. 남겨진 사람들
15. 이어진 인연
16. 다시, 지금
에필로그
먹빛 하늘 아래, 부러진 돛대 하나가 성난 바다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한 사내가 뱃머리에 서 있었다. 서른 명의 목숨이 그의 등 뒤에 있었고, 다음 파도가 오면 배는 뒤집힐 것이었다.
사내는 허리춤에서 한 뼘 반 남짓한 단검을 뽑았다. 단검의 생명을 이끌어 내는, 자신도 뜻을 다 모르는 말을 외웠다.
“…샴시르 에 보조르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외쳤다. 더 크게, 발음을 고쳐가며. 그러나 단검에 박혀 있는 붉은 돌들은 조용했다.
파도가 뱃전을 넘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그때 사내의 눈이 갑판 끝에 매달린 한 사람에게 닿았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폭풍 속에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킨다.”
그리고 다시, 이번엔 외치지 않고 마음으로만 그 말을 떠올렸다.
붉은 돌들이 울었다.
***
빛이 아니었다. 낮고 긴 울음이 먼저였다. 새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무엇이 내는 소리.
그다음에 붉은 것이 번졌다. 검신에서 시작해 사내의 손목을 타고, 팔을 타고, 어깨를 지나 온몸으로. 그리고 몸에서 흘러넘쳐 배 전체로.
붉은 기운이 배를 감쌌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옆구리를 향해 무너져 내렸고 — 그리고 밀려났다. 붉은 막에 부딪혀 좌우로 갈라지며 지나갔다. 위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배가 천천히 균형을 되찾았다. 두 번째 파도가 왔다. 그것도 갈라졌다. 세 번째도.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다만 사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검을 쥔 손등에는 검은 핏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 붉은 빛이 — 바다가 아니라 그를 삼키고 있는 것처럼.
폭풍이 잦아든 뒤에도 사내는 오래도록 검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누군가 그 손을 억지로 벌려서야 검이 갑판에 떨어졌고, 붉은 빛은 촛불이 꺼지듯 사라졌다. 그가 무릎을 꺾을 때, 아무도 그 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 검은 지금,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누워 있다. 붉은 돌은 식은 지 오래고, 손잡이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한 단어는 천오백 년째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 이 책 본문 中에서
천오백 년 전 서쪽의 왕자가 동쪽의 신라에 닿고, 그가 버린 왕가의 보물이 한 자루의 검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은 이 낯설고도 매혹적인 상상에서 출발한다. 경주 계림로에서 출토된 황금보검과 페르시아 왕자의 동방 망명을 전하는 『쿠쉬나메』 사이의 빈칸을 작가는 역사와 신화, 모험과 우정으로 채워 넣었다. 실재하는 유물에 허구의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은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이다.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 누워 있던 검이 누군가의 체온과 기억을 품은 존재로 되살아나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천오백 년 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작가가 이 긴 여정을 통해 전하려는 것은 유물의 기원이나 왕조의 흥망만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늦게 출발한 사람도 끝내 자기 자리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키려는 것은 왕과 나라보다 곁에 있는 서로라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나라를 잃은 아브틴이 빈손으로 신라에 도착해 낯선 말과 음식을 배우며 다시 살아가는 모습에는 작가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한 시간이 겹쳐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모험은 영토를 되찾는 이야기이면서, 상실 이후에도 새로운 삶을 일굴 수 있다는 회복의 서사로 읽힌다.
소설의 중심에는 페리둔과 원랑의 우정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혈통과 운명을 지녔지만, 상대의 과거를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인다. 페리둔이 원랑에게 왜 가본 적도 없는 페르시아 이야기를 그토록 열심히 듣느냐고 묻자, 원랑은 “네 얘기니까. 네 얘기면 다 궁금해”라고 답한다. 이 짧은 문장은 두 사람이 함께 걷게 될 긴 여정을 압축한다. 원랑은 친구의 나라를 되찾는 싸움에 자신의 삶을 건다. 페리둔 역시 원랑에게 왕가의 성물을 맡기며 권력보다 우정을 앞세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그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갈수록 커진다. 신뢰가 깊어질수록 상실의 두려움도 커진다는 점이 이들의 관계에 묵직한 긴장을 더한다.
당건, 호련, 칠곡은 이 작품의 균형을 흔드는 또 다른 축이다. 당건은 강하지만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호련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길을 읽지만 인정받지 못한다. 칠곡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원랑은 이들의 상처를 지우지 않고, 각자의 힘이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만 이끈다. 그 과정에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앞서 나가려는 당건과 신중한 호련은 자주 부딪히고, 칠곡은 스스로의 부족함에 갇힌다. 원랑은 모두를 지키려 하지만 그 선택은 때때로 침묵과 은폐가 된다. 서로를 아끼기 때문에 더 날카롭게 어긋나는 이 관계가, 이야기의 긴장을 끝까지 끌고 간다.
작품은 인물들의 내면만큼이나 장르적 재미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사막을 건너는 추격전, 신라와 페르시아를 잇는 항해, 폭군의 군대와 맞서는 전쟁, 궁 안으로 스며드는 정체불명의 어둠, 목숨을 대가로 힘을 내어주는 단검이 장면마다 속도와 긴장을 만든다. 특히 당건의 힘, 호련의 전략, 칠곡의 활, 원랑의 결단이 전투 속에서 서로 맞물리는 대목은 여러 인물이 각자의 능력으로 전세를 바꾸는 쾌감을 준다. 한 사람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다. 누구의 힘도 홀로 완전하지 않으며, 각자의 재능이 연결될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현재의 윤서가 단검의 비밀을 추적하는 서사도 이야기의 몰입을 높인다. 과거의 장대한 모험과 현대의 유물 연구가 교차하면서 독자는 검이 어떤 경로로 경주에 묻혔는지, 손잡이 안쪽의 문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계속 궁금해하게 된다. 전쟁과 음모가 서사의 바깥을 밀어간다면, 검에 새겨진 단어의 비밀은 이야기의 안쪽을 붙잡는다. 역사 미스터리와 판타지 모험이 한 흐름 안에서 만나는 구조다. 이 소설의 악은 단순한 괴물의 얼굴로 드러나지 않는다. 자하크는 처음부터 악이었던 존재가 아니라, 한 번의 선택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반복하며 스스로 괴물이 되어간 인물이다. 신라 궁의 어둠 역시 침묵과 외면 속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결국 이 이야기가 겨누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인간의 내면이다.
검 손잡이 가장 깊은 곳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한 단어가 새겨져 있다. 그 단어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순간, 독자는 이 소설의 수많은 전투와 항해가 결국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작가가 천오백 년의 시간을 건너 남기고 싶었던 것은 위대한 왕의 이름이나 승리의 기록이 아니다. 서로를 기억하고, 곁을 지키며, 끝내 혼자 두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 소설 『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은 역사적 상상력과 판타지의 활력을 즐기게 하면서, 관계가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한다. 늦게 자기 자리를 찾은 사람들, 서로 다른 힘으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 두려움 속에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 안에서 하나의 별자리처럼 이어진다. 독자는 단검의 비밀을 따라가는 동안, 자신은 누구의 곁을 지켜왔으며 또 누구를 끝까지 기억하고 싶은지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