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서

출간도서

눈의 꽃

정시예 소설집

눈의 꽃

정시예 소설집
  • 저자

    정시예
  • 출간일

    2026년 9월 14일
  • 페이지

    236쪽
  • 판형

    46판형(128*188mm)
  • 정가

    14,000원

책 소개


   “황궁에 팔려 가듯 시집온 작은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외로운 황족 소년의 유일한 봄이 되어가는 이야기.”


   홍화륜의 유서 깊은 명문가인 은씨 가문에는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주워져 자란 소녀 설(雪)이 있다. 부모도 이름도 없이 떠돌던 설은 은씨 가문의 막내딸 연희의 손에 거두어져 가족 같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궁에서 멀리 떨어진 홍화륜에 병약하기로 유명한 황족 연왕 진서하가 방문한다. 그의 방문은 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황궁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입은 황족 소년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신부는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간다.


   《눈의 꽃》은 차가운 겨울처럼 얼어붙어 있던 두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녹아가며 피어나는 성장과 사랑, 그리고 황궁의 음모와 운명을 그린 동양 판타지 로맨스이다.




소설가 정시예


   햇빛이 스며들듯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야기와, 마음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을 이야기를 쓰고 싶다.



추천사

작가의 말



01. 혼례(婚禮)

02. 연왕(燕王)

03. 전야(前夜)

04. 흑야(黑夜)

05. 패월(閉月)

06. 설야(雪夜)

07. 설화(雪花)



   날이 밝았다. 설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서하의 잠든 얼굴이 보인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눈가를 가볍게 쓸자 조용히 감긴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눈이 마주쳤다. 설은 그 까만 동공에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려 애써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날처럼 텅 빈 눈동자. 이젠 그 눈썹의 움직임만으로도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자신했는데. 

   “왔네요.”

   “응.”

   서하가 아이의 작은 손을 쥐어 깍지를 끼며 말했다. 아이가 깍지 낀 손을 힘주어 마주 잡았다. 정말이지, 꽉 붙잡고 있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다. 아이에게 소년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제 혼자서 계속 글씨 연습했어요.”

   “장하구나.”

   “너무 열심히 했더니 아직도 손이 저려요. 오늘은 쉴래요.”

   “핑계도 좋지.”

   소년이 기막혀하며 웃었다. 창백한 낯에 약간의 혈색이 돌아왔다,

   “전하는 오늘 뭐 할 거예요?”

   “글쎄.”

   “하고 싶은 건 없어요?”

   “그냥 이대로 너랑 빈둥거리는 거?”

   키득거리며 소년이 이불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이 평소답지 않게 너무 귀여워서, 설을 다가가 소년의 매끄러운 뺨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뺨에 닿은 부드러운 감촉에 소년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멍한 얼굴 또한 귀엽기 그지없어서,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 이 책 본문 中에서



   첫눈이 내리는 날, 꽃이 피어있다면 어떤 풍경일까. 이 책 『눈의 꽃』은 제목만으로도 그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다. 차갑고 고요한 겨울과 아름답게 피어난 꽃,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존재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자연스레 시선이 머문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작품이 단순한 궁중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처와 온도를 지닌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번 더 바라봐 주는 시선에서, 조용히 곁에 머물러 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 책 『눈의 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설과 서하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인물이다. 설은 이름처럼 맑고 순한 기운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는 쉽게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세상의 질서와 권력의 무게를 다 알지 못하는 어린 존재로 시작하지만, 사람의 아픔을 먼저 알아보는 감각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반면에 서하는 아름답고 차가운 사람이다. 꽃처럼 눈에 띄지만, 그 아름다움 안에는 가까이 다가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상처가 숨어 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더 천천히, 더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이 소설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상처 입은 사람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받을 자격을 잃은 사람은 없다는 마음이다. 서하의 삶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은 한 사람의 성격을 차갑게 만들고, 타인의 손길을 두렵게 만들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위로나 단호한 충고가 아니다.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 아픔을 억지로 캐묻지 않고도 알아보는 사람, 떠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다. 설은 그런 방식으로 서하의 세계에 스며든다.


   작가는 이 관계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평온하지 않고, 그들이 놓인 환경 또한 다정하지 않다. 황궁의 권력, 가문의 계산, 신분의 차이, 어른들의 선택은 두 사람의 삶을 계속 흔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모든 외부의 힘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사람의 진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욕망과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은 그 차이를 설과 서하의 시간을 통해 천천히 드러낸다.


   이 책 『눈의 꽃』에서 ‘눈’과 ‘꽃’은 두 인물을 비추는 상징이다. 눈은 차갑지만, 때로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세상을 덮고 보호한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설은 눈처럼 내려와 서하의 고통 위에 머문다. 서하는 꽃처럼 아프게 피어있으면서도 설을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눈과 꽃은 서로 다른 계절의 존재 같지만, 이 소설 안에서는 서로를 견디게 하는 이름이 된다.


   이 소설은 사람의 마음이 변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인물들은 쉽게 고백하지 않고, 쉽게 치유되지도 않는다. 한 번 다친 마음은 한 번의 다정함으로 모두 회복되지 않는다. 작가는 내면의 변화를 설과 서하의 관계 속 작은 장면들에서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손을 잡는 일, 곁에 머무는 일, 이름을 불러주는 일, 함께 길을 걷는 일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두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간다. 이 사소함이 쌓일 때, 독자는 비로소 사랑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느끼게 된다.


   문장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받쳐준다. 매화 향, 첫눈, 달빛, 등불, 차가운 밤공기 같은 감각적 이미지들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조용히 비춘다. 특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풍경 안에 스며드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의 눈빛, 손끝의 떨림, 짧은 침묵, 돌아서지 못하는 걸음 속에 인물의 감정이 놓인다. 이처럼 작가는 장면을 통해 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인물들의 숨겨진 마음을 함께 헤아리며 읽게 된다.


   『눈의 꽃』은 궁중 로맨스라는 장르의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를 깊이 담아낸다. 화려한 궁은 아름다운 배경이기보다 인물들이 견뎌야 할 세계에 가깝고, 사랑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불빛처럼 놓인다. 권력은 사람을 흔들고, 운명은 자주 잔인하지만, 한 사람의 진심은 때로 그 모든 것보다 끈질기다. 작가는 바로 그 마음의 힘을 믿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설과 서하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 바람은 단지 두 사람이 행복한 결말을 맞기를 기대하는 마음만은 아니다. 아픈 사람이 더 이상 혼자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린 마음이 세상의 잔혹함 속에서도 끝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는 일을 멈추고 누군가의 곁에서 다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깝다. 이 작품은 그런 바람을 독자의 마음 안에 조용히 남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려는 것은 결국 사랑의 구원성이라기보다 사랑의 지속성에 가깝다. 누군가를 단번에 구해내는 사랑보다 오래 곁에 남아주는 사랑, 상처를 없애주지는 못해도 그 상처가 한 사람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사랑 말이다. 이 책 『눈의 꽃』의 이야기는 애틋하면서도 담담하고, 아름답다. 차가운 겨울 끝에 피어나는 꽃처럼! 그래서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온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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